무슈 디올은 1905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그랑빌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비료 사업으로 가문의 토대를 닦았고, 아버지는 세제 개발로 부를 일궜다.
삼촌이 프랑스 무역부 장관을 지낼 정도로 명망 있는 집안이었다.
완벽하게 차려입은 어머니가 정원을 가꾸는 모습은 그의 머릿속에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다.
부모는 아들이 외교관이 되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디올의 꿈은 건축가가 되는 것이었다.
1930년부터 4년 동안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갤러리를 운영하며 달리나 브라크 등의 작품을 전시하고 예술가들과 교유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졌고 어머니와 형제들은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무슈 디올은 정신질환과 폐결핵을 안고 발레아레스 제도로 요양을 떠났다.
생계를 위해 일러스트를 그리며 패션에 대한 열정을 키우던 그는, 파리로 돌아와 디자이너 피에르 발맹 등의 문하에서 일했다.
46년 12월 독립적인 하우스를 열어 이듬해 2월 첫 컬렉션에서 훗날 뉴 룩으로 명명된 ‘바(BAR) 수트’를 발표하며 일약 스타가 됐다.
50년에는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고, 57년에는 ‘타임’의 표지를 장식했다.
그해 10월 심장마비로 돌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벌라인(허리를 풍성하게 한 디자인)’ ‘튤립라인’ ‘H라인’ ‘A라인’ ‘Y라인’을 줄줄이 내놓으며 패션계를 리드했다.
불과 10년 동안 패션 역사에 길이 남을 거장이 된 것이다.
“드레스는 여성의 몸의 비율을 향상시키기 위한 유한한 형태의 건축물과 같다” “드레스는 옷감의 흐름대로 건축된다”와 같은 말에서 구조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집념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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