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엡 스트라우스는 1847년 18세에 뉴욕에서 직물상점에서 일했다.
아버지가 사망후 그는 떠돌이 행상으로 미국 전역을 누비며 뉴욕 상점의 물건들을 지방에 사는 농부들의 현관에서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1853년 그는 누이 패니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매부인 데이비드 스턴 그리고 매부의 이복형제 루이스와 함께 리바이 스트라우스&CO.를 설립했다.
그들은 금광업자, 선로 보수원, 농부, 벌목꾼들등 서부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일상용품들을 판매했다.
판매 상품중 작업바지는 거친 노동으로 쉽게 찢어지곤 했다.
네바다에서 광산 노동자들을 위해 바지를 만들어왔던 버지니아시티 출신의 재단사 제이콥 데이비스는 1872년 아주 튼튼한 청바지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는 늘 돈에 쪼들려서 특허를 신청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예전에 원단을 납품했던 리바이 스트라우스와 접촉했다.
1873년 데이비스와 스트라우스는 리벳에 관한 특허권을 분할해서 취득했고 그때부터 데이비스는 리바이 스트라우스의 생산 책임자로 일했다.
새롭고 튼튼한 바지는 엄청난 매상을 올렸다.
1886년 품질에 자신이 있었던 이들은 바지의 오른쪽 주머니에 말 두 마리가 바지를 찢으려고 애를 쓰지만 실패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을 넣었으며 “찢어지면 새것으로 교환”이라고 붙이게 된다.
리바이스는 1890년 더블X501이라는 브랜드명을 갖게 됐고, 1896년부터는 청바지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1902년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던 나머지 누이 패니의 아들들인 네명의 조카들이 물려받게된다.
1928년 리바이 스트라우스&CO.는 리바이스라는 상표명을 도입하며 현재 “Made In USA” 리바이스는 존재하지 않게 됐으며 저임금 국가에서만 생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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