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과의 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프랑스 왕실에 제품을 공급하던 루이뷔통이 일반을 상대로 장사를 시작한 19세기 중반부터 모조품이 등장했다. 지금은 루이뷔통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LV이니셜, 꽃, 별무늬가 반복된 모노그램이 기실 모조품 방지책의 하나였다. 올 한 해도 대한민국은 ‘짝퉁’으로 들썩였다. 하지만 2006년 한국형 짝퉁은 과거의 모조품과는 달랐다. 동대문시장이나 이태원 등지에서 팔리는 모조품들, 누가 봐도 가짜인지 알 수 있는 짝퉁이 아니라 백화점을 통해 진짜 ‘명품’인 것처럼 둔갑했다. 이른바 ‘빈센트 앤 코’사건. 국내 유명 백화점에서 중국산 부품으로 만든 조잡한 시계를 100년 동안 유럽 왕실에만 한정 판매했다는 스위스산 명품시계로 선전했다. 유명 연예인들을 포함한 명품족들은 원가 20만원도 안 되는 짝퉁을 수천만원에 구입해 자랑하고 다니다가 망신을 당했다. 신생 브랜드를 180년 전통의 시계 브랜드로 속였던 ‘지오모나코’ 사건도 있었다. 이른바 ‘짝퉁 감별사’로 불리며 그야말로 정신없는 한 해를 보낸 이재길(34) 한국의류산업협회 산하 지적재산권보호센터 법무팀장은 이 사건을 ‘대국민적 사기극’이라고 규정했다. “예컨대 모나미 볼펜을 흉내 내 가짜 모나미 볼펜을 만들어 파는 것. 이게 지금까지의 짝퉁 범죄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존재하지도 않는 브랜드를 만들고 이것을 ‘명품’이라고 선전한 것이죠.” 이런 ‘사기극’의 바탕에는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힌 ‘명품병(病)’ 때문이다. 명품 본연의 가치보다는 ‘좋은 것은 비싸다’는 통념 속에 사로잡힌 허영심이 웃지 못할 촌극을 연출했다는 게 이 팀장의 분석이다. “명품의 원래 정의는 ‘장인의 손을 거친 격조 높은 제품’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본 의미는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고가(高價)’의 의미만 남아 있죠.” 기존 짝퉁 범죄의 진화도 눈부실 정도다. 최근에는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해 정밀감정이 필요한 ‘스페셜 A급’ 위조품이 양산되고 있다. “새로 출시되는 제품을 가장 먼저 사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짝퉁 판매업자일 것”이라는 이 팀장은 “이들은 구입한 옷을 연구해 다음날 바로 모조품을 내놓을 정도라 짝퉁에 대처하기가 점점 힘들다”고 털어놨다. 올 한 해만 하루 10건씩 4000여건의 명품을 감별한 이 팀장은 “주변 사람들이 명품이라고 확신한 브랜드의 상당수는 가짜”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노 메이커족’이다. 이 팀장은 “내년에는 한가한 한 해를 보내고 싶다”는 말로 짝퉁범죄가 사라지기를 기원했다.
하남현 기자(airinsa@heraldm.com)
- 헤럴드경제 / 2006.12.25 |